1. 사라졌음을 알아차려라
신체적·정신적·감정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지혜로운 방법들 중 하나는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예전에 경험한 뭔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도록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흡을 마치면 호흡이 끝났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사라진 것이다. 숨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그게 언제 완전히 끝났는지 알 수 있다. 생각이 끝나면 그 생각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린다. 사라졌다. 느끼던 감정(기쁨, 분노, 슬픔 등등)이 끝나면 그게 끝났다는 데 주목한다. 사라진 것이다.
이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명상 수련법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명상 지도자인 신젠 영Shinzen Young은 자신이 만일 집중의 기술을 딱 하나만 가르칠 수 있다면, 이걸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신젠이 쓴 〈사라진 것의 힘The Power of Gone〉이라는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감각적인 경험의 전부 또는 일부가 갑자기 사라질 때마다, 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하라는 말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사이의 전이점을 발견하면 그걸 분명하게 인정하라는 뜻이다.
원한다면 이런 변화에 주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신적인 꼬리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난 것에는 모두 ‘사라졌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잠시 동안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다. 뭔가가 사라질 때까지 그냥 시간을 보내면 된다. 만약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걱정되기 시작한다면, 그 생각이 끝날 때마다 거기에 주목하면 된다. 그것도 ‘사라진’ 것이다. 머릿속에 많은 문장들이 들어 있다면 마침표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끝,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걸까? 왜 우리는 특정한 정신적 재잘거림이나 특정한 외부의 소리, 또는 특정한 신체 감각이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을 감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드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당신이 신체적 통증, 정서적 고통, 정신적 혼란, 생각이나 인지의 방향 상실 같은 끔찍한 상황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고 해보자. 당신은 어디에서 위안과 치유를 얻을 수 있을까?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까?
당신의 육신에 의지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곳에는 고통과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당신의 마음에 기대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곳에는 혼란과 불확실성뿐이다. 시력과 생각, 청각 등의 감각에 의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소란과 혼돈밖에 없으니까.
이처럼 엄청난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당신이 위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있다. ‘모든 감각에 대한 공격은 곧 사라진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된다. 다시 말해 새롭게 ‘떠오르는 것들’에 의지하던 평소의 습관을 바꿔, 이제 새롭게 ‘지나가는 것들’에 의지하면 된다. 이런 위안은 언제든 얻을 수 있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 토네이도]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 끊임없는 생각과 생각에 꼬리를 물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씻을 때에도, 일을 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다른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들로 보았을 때, 명상은 유익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들이 아닌 사라진 것들에 집중해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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